궁리 [도서안내]
[제목]: 갈라파고스
[저자]: Paul D. Stewart, Godfrey Merlen, Patrick Morris, Andrew Murray, Joe Stevens and Richard Wollocombe.
[역자]: 이성호
[대출]: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JUL 02 - AUG 02, 2010)
[독서]: 제1회독 (JUL 02 - JUL 31, 2010)
- 영국 BBC에서 제작한, 에콰도르領 갈라파고스諸島 안내서.
- 여러 전문가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공을 들이면,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한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 주는 책.
- 추천서문: (pp.6-7).
과학의 착한 요정이 전세계를 날아다니다가 그녀의 요술지팡이로 건드리고 싶은 가장 멋진 곳을 찾는다.
그리고 그곳을 과학의 낙원이자 지리학과 생물학의 에덴동산, 진화생물학자들의 아르카디아(이상향)로 바꿔놓았다.
아마도 여러분은 요정의 의도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요정이 빛을 비춘 그곳에 대해서만큼은 아무런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곳은 '서경 91도, 남위 1도'로 에콰도르 해안에서 서쪽으로 1,170킬로미터, 東태평양에 위치한 다윈의 '赤道共和國',
바로 갈라파고스이다.
요정은 요술지팡이로 이곳을 축복했고 폴 스튜어트가 지옥의 입(hell-mouth)이라 묘사한 화산분출구, 즉 열점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 사이에 요정의 조력자인 代母는 나스카(Nazca)板을 1년에 약 4센티미터씩 대륙 쪽으로 질서정연하게 이동시켰다.
용암이 위로 분출한 뜨거운 지각, 그 위로 板 이동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두 가지 지질현상이 사이좋게 빚어낸 결과로,
폴 스튜어트가 지질학적 컨베이어벨트라고 부른 곳에서 갈라파고스諸島가 솟아올랐다.
결국 이곳은 거의 완벽한 자연의 진화실험실 - 과학의 천국에서 계획된 실험의 무대가 되었다.
언젠가는 죽고 말 운명인 우리는 그 실험무대를 섬이라 부른다.
그 섬들은 생성연대순으로 정렬되어 있는데,
서쪽의 가장 젊은 페르난디나 섬의 검고 견고한 용암벽돌부터,
지질학적으로 볼 때 머지않아 과거에 이미 소멸한 그들의 선배들처럼 파도 아래로 사라져버릴 동쪽의 에스파뇰라 섬까지 줄지어 있다.
나는 한 해 동안 두 차례나 그곳을 방문한 적도 있지만,
그보다는 폴 스튜어트의 경이로운 책을 읽을 때 위와 같은 생각이 들도록 자극받았다.
나는 이 책에 놀라운 사진들이 포함되었으리라 기대했다.
화려한 수상경력이 빛나는 카메라맨 데이비드 애튼버러(1926~ , 영국의 저명한 자연다큐멘터리 제작자이자 방송인 - 옮긴이)와
그 유명한 BBC 자연사팀이 제작하였는데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미처 몰랐던 것은 폴 스튜어트가 그에 상응하는 저술가라는 사실이다.
출판사는 내가 이 책에 수록될 사진을 보기 전에 원고를 먼저 보내왔다.
단 하루 만에 원고를 다 읽은 나는
'저자가 이처럼 글로 사진들을 그려낼 수 있다면 도대체 어떤 독자에게 사진이 필요하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사진들이 도착했을 때는 모두 돌려보냈다.
어쩌면 우리에게 사진들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 사진들을 갖는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착한 과학요정과 요술지팡이에 대한 나의 몽상으로 돌아가서,
그곳의 열점은 南아메리카대륙으로부터 세심하고도 정확한 위치에 있을 필요가 있다.
너무 가깝다면, 諸島는 南아메리카에서 온 이주민들로 넘쳐났을 것이다.
그러나 절묘하게도 섬들은 대륙의 딱 변두리에 위치한다.
역시 너무 멀었다면 섬들이 우리에게 말해줄 것들이 너무 빈약했을 것이다.
그러나 화산의 지옥입이 대륙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고,
섬들이 깔끔하게 배치된 결과 그곳에서는 커다란 진화학적 혼돈이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런 혼돈 속에는 정교하게 디자인된 실험임을 보여주는 적절한 균형이 존재한다.
흥미를 끌만한 풍부한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혼동을 주거나 숨막힐 것 같은 과제를 남기지는 않는다.
이 책에서 분명히 언급한 것처럼,
다윈 자신은 이후에 그가 보여준만큼 많은 것들을 가져가지는 않았다.
비록 그가 갈라파고스를 그의 관점이 태생한 기원으로 묘사했지만,
당시에는 그가 표본들을 분류할 동기를 가질 만큼 충분히 성숙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의 핀치들을 뒤섞었고, 비글 호 선원들은 배에 실은 성체 코끼리거북들을 먹어치웠다.
후에 다윈은 진화론에 대한 연구에 착수하기 위해 피츠로이 선장과 코빙턴이 집으로 가져간 핀치들에 의존해야 했다.
다윈과 갈라파고스의 이야기는 이 책에서 한 章의 주제이다.
갈라파고스 諸島 발견의 역사와 뒤이은 이민자들의 소름끼치는 이야기들 역시 인간과 관련된 문제로서 충분히 흥미롭다.
지질학에 관한 章들도 그러한데,
섬과 주위 바다에서의 삶, 이 무한한 가치를 보존하려는 노력, 진화의 자연박물관은 우리의 실패한 과거를 만회해준다.
저자인 폴 스튜어트는 감동적인 열변을 토한다.
"탐욕과 자연사는 비참함의 쌍둥이 암수 夢魔(incubus와 succubus)라는 사실을 되풀이해 증명한다."
이 '매혹적인 諸島(Las Encantadas)'를 방문하고 싶은 꿈을 간직한 사람들에게는
책 말미의 '지명색인/가이드북'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가 충분하다.
폴 스튜어트의 "갈라파고스"는 내가 다음에 이곳을 방문할 때 귀중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나는 탑승할 배의 서가에 기증하기 위해 이 책을 한 권 더 가져가려 한다.
만약 여러분이 갈라파고스를 개인적으로 방문할 수 없다면, 이 책을 읽고 감상하기를 권한다.
비록 여행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즐거울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