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TV, 책을 말하다 [다시보기]
[제목]: 인연
[저자]: 피천득
[대출]: 서울대학교 경영학도서관 (APR 16 - MAY 16, 2008)
[독서]: 제1회독 (APR 16 - APR 29, 2008)
- 한국 수필문학의 白眉.
- 이 수필집에서 주요 찬미의 대상으로 세 여인 - 어머니, 아사코, 딸 서영 - 이 등장한다.
정작 저자의 아내는 예찬의 대상이 되기는 커녕, 딸의 면전에서 어머니로서의 체면이 깎이고 있으니, 파격이 아닐 수 없다 (p.116): - 일본여인 아사코와의 세차례 만남을 담담히 그린 대표작, 「인연」의 아래 대목은,
일본 애니메이션 「秒速5センチメートル」를 통해 훌륭히 변주되고 있다 (p.137). - (2007년) 타계 전, 저자가 (사실상 마지막으로) 직접 출연한 (2002년) TV 대담에서,
진행자(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교수 박명림)는,
피천득 선생과 아사코 사이의 인연이 이루어지지 못하였음에 (독자로서)안타까움을 거듭 토로하는데,
이미 다른 분과 혼인하여 노년에 이른 분에게 그 소감을 노골적으로 피력함은,
도에 지나쳐, 실례되는 일이 아닌가 한다. - TV 대담 중 아래의 문답 장면에서는, 진솔한 고백을 통해 듣는 이를 숙연케 한다.
- 진행자 [41:29]:
- 피천득 [41:44]:
- (답변 중, 회색으로 처리한 대목만큼은, 아무리 다시 들어도 해독되지 않는 고충이 있다.)
- 따라서, 島山 안창호 선생에 대한 숭모의 글을 접하노라면, 위인의 풍모 앞에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다 (pp.147-148).
내가 서영이 아빠로서 미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내 생김생김이 늘씬하고 멋지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따라서 아름다운 아내를 맞이하지 못하였던 것이 미안하다.
젊은 아빠가 아닌 것이 미안하다. 보수적인 점이 있기 때문이다.
기대가 커서 그것에 대한 의무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미안하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선생님, 지금[까지] 90 평생을 살아오셨는데요.
선생님 일생을 아주 간단하게, 한마디로 평한다면 어떻게 [평]하실 수 있을까요?
(내 인생은 무엇이었다.)
그저 인생을 착하고 아름답게는 살려고 했는데, 그것에 그치고...
우리 나라는 과거에 저항 운동을 꼭 해야 할 필요가 많을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에 내가 앞장서서 저항운동을 못한 것,
그런 것이 언제든지 부끄럽고, 내 자존심도 상하고, 사실은 그렇습니다.
내가, 마음에 없이, 우리 나라 애국사상을 소홀하게 하거나 그런 적은 없고,
또, 요새 친일문학이라는 것 때문에 야단들 하고들 있는데,
나는 친일하는 글을 한줄도 써본 적은 없어요.
그때는 내가 금강산에 일부러 가서 일생을 절에서 보내려고 한 때도 있고,
그래서 그런 점은 내가 자위를 조금, 그나마 하는데,
우리 나라에는 과거에 저항 운동을 꼭 해야 될 필요가 여러 번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을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하고,
(□□ □□을 □□□, □□) [뒷]골목으로 다니면서 한숨이나 쉬고,
이렇게 한 것이 지금으로서도 한이 되고, 부끄럽고, 그렇습니다.
도산 선생께
선생께서는 나라에 재목이 될 나무들을 40년 간 심고 가셨습니다.
정성과 사랑으로 가꾸신 나무들은 싱싱하게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이 순국하신 후 아깝게도 일제 탄압을 대항하지 못하고 쓰러져 버린 나무들이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끝끝내 굴하지 않고 꿋꿋이 견디어 낸 나무들도 있었습니다.
저 같은 땔나무감밖에 되지 못하는 것은 치욕을 겪으면서 명맥을 부지했습니다.
선생의 제자답지 못한 저, 그래도 선생님을 사모합니다.
선생은 민족적 지도자이시기 이전에 평범하고 진실한 어른이셨습니다.
저는 영웅이라는 존재를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권력을 몹시 좋아합니다.
드골 같은 큰 인물도 예외는 아닙니다.
간디 같은 성자는 모든 욕심을 초탈한 분이지만 현대에 적당치 않은 고집을 갖고 있었습니다.
선생은 상해 망명 시절에 작은 뜰에 꽃을 심으시고 이웃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다 주셨습니다.
저는 그 자연스러운 인간미를 찬양합니다.
거센 풍우에 깎이고 깎여도 엄연히 진실을 지키신 도산.
앞으로 몇백 년, 몇천 년 이 나라의 젊은이들은 당신을 바라보고 인내와 용기, 진실을 배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