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TV, 책을 말하다 [다시보기]
[제목]: 그리스인 조르바
[저자]: Νίκος Καζαντζάκης
[역자]: 이윤기
[열람]: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SEP 27 - OCT 27, 2010)
[독서]: 제1회독 (SEP 27 - OCT 27, 2010)
-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대표작.
- 카잔차키스가 스스로 꼽는, 영혼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들:
- 호메로스.
- 베르그송.
- 니체.
- 조르바.
- 「작가론」을 쓴 옮긴이가 덧붙이는, 카잔차키스의 영혼에 골을 남긴 사람:
- 부처.
- 카잔차키스의, 조국 그리스 여행:
- 아토스 산 순례기:
- 그가 아토스 산에서 만난 (거짓) 수도승들:
- 동굴의 마카리오스: 극단적인 영혼 지상주의자.
- 한 파계승: 극단적인 육체 지상주의자.
- '파계승의 고해를 듣는 순간' = '청년 카잔차키스가 새로운 십계명을 찾아 긴 여정에 오르는 순간'.
- 조르바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대목: (pp.345-351).
- 옮긴이 이윤기의 요약:
카잔차키스는 두 차례에 걸쳐 노벨 문학상 후보로 지명되나
1951년에는 스웨덴 작가 라게르크비스트에게,
1956년에는 스페인의 시인 히메네스에게 영광을 물린다.
이를 두고 영국의 문예 비평가 콜린 윌슨은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적이 있다.
"카잔차키스가 그리스 인이라는 것은 비극이다.
이름이 카잔초프스키였고, 러시아 어로 작품을 썼더라면,
그는 똘스또이, 도스또예프스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스 민족 시인 호메로스는 그의 고향 크레타이자 조국 그리스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는 호메로스에서 출발한다.
호메로스라는 이름은 카잔차키스라는 존재의 정체이기도 하다.
1908년 아테네에서 대학을 마치고 파리로 간 카잔차키스는 이곳에서 生哲學者 앙리 베르그송을 만난다.
그가 베르그송에게 경도된 것은,
인간 존재란, 신이 어떤 목적에 따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딛고 넘어가게 마련된 단계에 불과한 것,
따라서 <신>이라고 하는 것은 그 도약의 디딤돌로 인간이 창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자기의 예감을
베르그송의 생철학에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카잔차키스를 구축하는 정신의 피라미드 바닥에는 또 한 사람의 유럽 철학자가 있다.
베르그송 다음으로, 그가 저서를 통해서 만나게 되는 철학자는 니체다.
니체의 <초인>을 인류의 희망이라고 부르면서 그는 자서전에 이렇게 쓰고 있다.
구원의 문은 우리 손으로 열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우리에게 <초인>은 희망이다.
<초인>은 대지의 종자이며, 해방은 그 종자 속에 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우리를 심연의 가장자리로 데려다 놓았다.
인간은 마땅히 저 자신의 본성을 뛰어넘어 하나의 초인이 되어야 한다.
신의 빈자리를 우리가 차지해야 한다.
주인의 명령이 없어진 지금, 우리 의지로써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 것이다.
조르바는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세계적인 작가로 일으켜 세운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이다.
카잔차키스는 자서전 『그리스 인에게 고함』에서 실존 인물 조르바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힌두교도들은 <구루(사부)>라고 부르고 수도승들은 <아버지>라고 부르는
삶의 길잡이를 한 사람 선택해야 했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택했을 것이다.
주린 영혼을 채우기 위해 오랜 세월 책으로부터 빨아들인 영양분의 질량과,
겨우 몇 달 사이에 조르바로부터 느낀 자유의 질량을 돌이켜 볼 때마다
책으로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 나는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한다.
둘이서 벌인 사업이 거덜 난 날 우리는 해변에 마주 앉았다.
조르바는 숨이 막혔던지 벌떡 일어나 춤을 추었다.
그는 중력에 저항이라도 하는 듯이 펄쩍펄쩍 뛰어오르면서 소리를 질렀다.
<하느님, 작고하신 우리 사업을 보우하소서. 오, 마침내 거덜났도다!>
바로 이 대목이 저 유명한 영화 『조르바』에서 조르바로 나온 안소니 퀸이 해변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다.
안소니 퀸은 1995년에도 뉴욕에서 장기 공연된 무대극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역을 맡은 바 있다.
호쾌하고 농탕한 사나이 조르바는,
떠도는 인간 카잔차키스가 한동안 쉬어 가고 싶어 하던 구원의 오아시스였다.
카잔차키스가 자기 영혼에 골을 남긴 사람으로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다음으로 꼽은 사람은 조르바이다.
그러나 그가 영혼의 편력에서 니체 다음으로 만난 이는 부처였다.
조르바와의 진정한 만남은, 부처와의 만남을 통한 <위대한 否定>의 경험 이후에나 가능했다.
지극히 이성적이던 그의 문학은,
불교적 세계관과 만나면서부터 불교적인 禪風을 내비치기 시작한다.
그는 인식의 주체인 <나>와, 인식의 객체인 세계를 하나로 통합함으로써,
말하자면 대극하는 무수한 개념을 하나로 통합함으로써
초라한 언어를 통한 온갖 是非를 삶 속으로 녹여 들인다.
그래서,
그가 편도나무에게 신이 무엇이냐고 묻자
편도나무는 대답 대신 꽃을 피워 버리는 것이다.
아토스 산은 기암 절벽의 험산이다.
아토스 산은 수도원과 수도승의 산이다.
사람이 기거하는 곳이라고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제비 집처럼 붙어 있는 수도승들의 암자뿐이다.
"......내 나이 벌써 예순.......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수도승이 되었어요.
그로부터 근 20년 동안
나는 저 아토스 산 수도원에서 하느님 말씀만 묵상했어요.
태어난 뒤로 한번도 여자를 가가이해 본 적이 없으니,
여자에 대한 열망으로 괴로워할 일이 있었을 리 없지요.
날이면 날마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히도록 땅바닥을 짚고 기도를 올렸지만
하느님은 내 앞에 나타나 주시지 않았어요.
나는 절망한 나머지 하느님께 간구했지요.
하느님,
나같이 하찮은 인간이 무슨 수로 하느님 뵙는 영광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만
단 한순간이라도 좋으니 이승 것이든 천국 것이든 구원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게 하시어,
제가 기독교인이 된 보람을 느끼게 해주시고,
아토스 산에서 보낸 세월이 헛된 세월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
울고불고, 금식하고 기도했지만 하릴없었어요.
내 마음은 열리지 않았어요.
악마가 내 마음을 잠그고 열쇠를 감추어 버렸었나 봐요.
그렇게 헛된 세월을 보내다가 살로니카로 파견된 뒤에야......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인 줄을 알면서도 나는 한 여인을 알게 되었답니다.
아...... 그 여자와 동침한 날 밤, 나는 평생 십자가에 못 박혀 있다가 부활하고 있다는 기가 막히는 느낌을 경험했답니다.
육신이 쾌락의 절정을 누리는 순간, 하느님이 두 팔을 벌리고 내게 다가오는 것 같더라고요.
나는 그날 밤 난생 처음으로 날이 밝아 오기까지 감사 기도를 드렸답니다.
전날까지만 해도 나는 기쁨을 모르는 인간, 기뻐해서는 안 되는 줄만 알고 있었던 인간이었어요.
그러나 여자를 알게 되는 순간 나는 다른 인간이 되었지요.
나는 그제서야 하느님이 얼마나 선한 분이신지, 하느님이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는 분이신지 깨닫고 감사기도를 올릴 수 있었어요.
하느님은 당신께서 창조하신 아름답고 우아한 여자를 통하여 나를 잠시나마 천국으로 이끌어 주셨던 것이지요.
나는 단식이나 고행을 통해서가 아니라 여자를 통해서 하느님 뵙고 그 품에 안길 수 있었던 것이지요.
40년 전의 그날 밤 이후로 나는,
죄 역시 하느님을 섬기는 데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한답니다.
속죄하라고요?
나는 안 해요.
분명히 말하거니와,
하느님의 벼락을 맞아 콩가루가 되는 한이 있어도 나는 속죄하지 않겠어요.
내게는 뉘우칠 게 없어요......."
"당신 대답이나 좀 들읍시다, 조르바, 어물쩍 내 질문을 피하지 마시고!
내 보기에는 당신은 조국 같은 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은데, 어때요? 그런가요?"
(중략)
"......내게는,
저건 터키 놈, 저건 불가리아 놈, 이건 그리스 놈,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두목, 나는 당신이 들으면 머리카락이 쭈뼛할 짓도
조국을 위해서랍시고 태연하게 했습니다.
나는 사람의 멱도 따고 마을에 불도 지르고 강도 짓도 하고 강간도 하고
일가족을 몰살시키기도 했습니다.
왜요? 불가리아 놈, 아니면 터키 놈이기 때문이지요.
나는 때로 자신을 이렇게 질책했습니다.
<염병할 놈, 지옥에나 떨어져, 이 돼지 같은 놈! 싹 꺼져 버려. 이 병신아!>
요새 와서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놈, 이런 식입니다.
그리스 인이든, 불가리아 인이든 터키 인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이냐, 나쁜 놈이냐?
요새 내게 문제가 되는 건 이것뿐입니다.
나이를 더 먹으면(마지막으로 입에 들어갈 빵 덩어리에다 놓고 맹세합니다만) 이것도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놈이든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요. 모두가 한가집니다.
태연해야지 하고 생각해도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오, 여기 또 하나 불쌍한 것이 있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자 역시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두려워 한다.
이자 속에도 하느님과 악마가 있고, 때가 되면 뻗어 땅 밑에 널빤지처럼 꼿꼿하게 눕고, 구더기 밥이 된다.
불쌍한 것!
우리는 모두 한 형제 간이지. 모두가 구더기 밥이니까.
그런데, 여자라면......
젠장, 눈이 빠지게 울고 싶어집니다요.
두목, 당신은 내가 여자를 너무 좋아한다고 놀리지요.
내가 어떻게 이것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젖통만 쥐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고 손을 들어 버리는 이 가엾은 것들을 말입니다."
(중략)
조르바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여 두어 모금 빨고는 던져 버렸다.
"......내 조국이라고 했어요?
당신은 책에 씌어져 있는 그 엉터리 수작을 다 믿어요?
당신이 믿어야 할 것은 바로 나 같은 사람이에요.
조국 같은 것이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 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나는 그 모든 걸 졸업했습니다. 내게는 끝났어요.
당신은 어떻게 되어 있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조르바라는 사내가 부러웠다.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었다.
내가 고독 속에서 의자에 눌어붙어 풀어 보려고 하던 문제를 이 사나이는 칼 한 자루로 산속의 맑은 대기를 마시며 풀어 버린 것이었다.
나는 비참한 기분이 되어 두 눈을 감았다.
"두목, 주무시오?"
조르바가 잔뜩 부은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붙잡고 이야기하는 내가 병신이지!"
카잔차키스의 문학은
존재와의 거대한 싸움터, 한두 마디로는 싸잡아서 정의할 수 없는 광활한 대륙을 떠올리게 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